친구의 아들이 중학교 1학년 때 과학영재 과정에 합격했습니다. 부모를 초청한 영재과정의 첫 시간에 담당 선생님이 당부했다고 합니다. “중학교 3학년이 되면 자녀를 더 이상 이 과정에 보내지 않는 부모님이 많습니다. 이번 기에는 그러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많은 부모가 자녀의 과학적인 관심과 재능을 키워주기보다는 특목고에 보내는 데 더 비중을 둡니다. 특목고 다음 일지망은 의과대학이겠죠.
부모의 선택은 사회의 반영입니다. 교과과정이 상부구조라면 노동시장은 하부구조입니다. 하부구조가 상부구조를 결정합니다. 노동시장이 변하지 않는 가운데 교과과정만 바꾸려고 한들 아무 소용 없습니다. 노동시장에서 이공계 전공자가 명예나 보람, 보상을 충분히 받는다면 ‘이공계 엑소더스’는 일어나지 않겠죠.
이공계의 엑소더스라는 표현은 과장이 아닙니다. 최근 3년 동안 전국 국·공립대에서 1만7000명에 가까운 학생이 이공계를 떠났습니다. 미국 내 한국 국적 이공계 박사학위 취득자 중 미국 체류 비율이 1994~97년 23.9%에서 2002~05년 43.0%로 약 20%포인트 높아졌습니다.
이코노미스트는 ‘과학의 달’ 4월을 맞아 엔지니어들이 체감하는 ‘사회적인 처우’를 직접 들어보기로 했습니다. 한국산업기술진흥원과 설문을 함께 작성해 돌렸습니다. 정부출연 연구기관과 기업의 엔지니어 240명에게서 응답을 받았습니다. 이들의 절반은 연구개발자에 대한 사회적 평판이나 대우가 중국에 비해서도 못하다고 답했습니다. 일본이나 유럽, 미국 같은 선진국보다 못함은 물론이고요, 과거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개발 시대와 비교해서도 못하다는 대답이 압도적으로 많았습니다.
엔지니어에 대한 보상은 인문계에 비해 박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석·박사 이상으로 갈수록 교육투자비용 대비 수익률 측면에서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끼는 것으로 분석됩니다. 예컨대 박사 학위를 받고 기업에서 일하는 인문계는 드문 반면, 엔지니어의 상당수는 박사와 박사후 과정을 거친 뒤 연구직 생활을 시작합니다.
엔지니어 국내외 유출을 막기 위한 방안을 묻는 질문에는 “보상을 강화해야 한다”는 응답이 40%였고, 그 다음으로 “연구과제 자율성 보장”이 20%, “사회적 인식 변화”가 15%를 차지했습니다. 이코노미스트 1035호에서 엔지니어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접할 수 있습니다.
매체는 정보를 제공하고 가치를 부여합니다. 사기가 떨어졌다는 현상을 전달하는 일도 매체의 역할입니다. 그러나 그걸로 역할을 충분히 수행했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매체는 명예를 부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코노미스트가 엔지니어 여러분을 작심하고 띄워주기로 했습니다. 이름하여 ‘대한민국 엔지니어 열전’입니다. 첫 회엔 3D TV를 개발하는 삼성전자 이주연 수석연구원을 소개했습니다. 엔지니어 설문조사와 엔지니어 열전은 임성은 기자가 기획하고 취재했습니다.
일본 시마즈 제작소의 연구원 다나카 고이치는 2002년 노벨 화학상을 받았습니다. 현장에서 고군분투하지만 자부심을 갖고 일하는 우리 엔지니어들 가운데서도 언젠가 노벨상을 받는 사람이 나오면 좋겠습니다.
백우진님의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