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안산에 살고 있는 김 모씨(73ㆍ여)는 20년 전 부정맥으로 심장 근육에 ’심박 조절기’를 넣었다. 심박 조절기는 전기적 자극으로 심장 근육을 수축시켜 심장 활동이 원활하게 이뤄지도록 돕는 장치다. 심박 조절기의 배터리 수명은 10년 안팎이어서 한번 몸속에 넣고 나면 주기적으로 바꿔줘야 한다. 하지만 현재 김씨는 심박 조절기 교체 수술을 할 수 없다. 고령으로 몸이 허약해져 수술을 하다가 건강에 또 다른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심박 조절기를 심장에 장착한 환자들은 주기적으로 심박 조절기를 바꿔줘야 하는 문제를 안고 산다. 심장 근육에 작은 기계 장치를 붙여야 하기 때문에 간단하게 할 수 있는 수술이 아니다. 과학자들은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포도당을 이용해 신체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생체연료전지’를 개발하고 있다. 포도당은 인간이 음식만 먹으면 몸속에서 무한정 만들어지기 때문에 한번 몸속에 들어간 생체연료전지는 반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생체연료전지가 상용화되면 의료기기는 물론 ’곤충 로봇’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생체연료전지는 혈액 속에 있는 포도당을 에너지원으로 사용한다. 포도당이 산화되면 전자가 발생하는데 이를 이용해 전기를 만들 수 있다. 생체연료전지를 개발하고 있는 경상대 나노신소재공학과 남태현 교수는 "포도당을 산화시키는 물질도 우리 몸속에 있는 ’포도당산화효소’를 사용한다"며 "배터리 역할을 하는 에너지원을 모두 체내에서 얻을 수 있어 생체연료전지를 탑재한 전자장비를 한번 몸속에 넣으면 반영구적으로 쓸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남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은 가로 세로 높이가 1㎝에 불과한 작은 생체연료전지를 개발했다. 생체연료전지는 독성이 없는 금속인 티타늄이 겉을 감싸고 있다. 티타늄에는 포도당만 통과시킬 수 있는 특수한 막이 장착되어 있어 생체연료전지 내부로 포도당만 들어갈 수 있다. 남 교수팀은 포도당이 있는 액체에 생체연료전지를 넣어 전기를 만들어내는 실험에도 성공했다. 하지만 포도당이 만들 수 있는 전기의 양은 아직 미미하다. 남 교수는 "이론적으로 포도당은 0.8V의 전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데 실제 실험에서는 이것보다 적은 양의 전기가 만들어진다"며 "휴대폰 배터리가 4V 정도 되므로 생체연료전지 내부에 전압을 높일 수 있는 회로를 넣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상용화까지 가기에는 시간이 많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불과 3년 전만 해도 포도당 내에서 전기를 얻는 것조차 어렵다고 했던 것을 감안하면 갈 길이 먼 것만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남 교수는 "2년쯤 뒤에는 상용화에 한발 다가선 생체연료전지를 내놓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생체연료전지는 영화에서나 볼 법한 ’사이보그 곤충 로봇’을 만드는 데도 사용될 수 있다. 파리나 딱정벌레 등의 곤충에 카메라를 장착해 적진으로 날려 보내려면 배터리를 함께 넣어야 하는데 무게가 무거워지기 때문에 곤충이 날 수 없었다. 최근 미국 클라크슨대 화학과 에브제니 카츠 교수팀은 살아 있는 달팽이와 랍스터의 몸속에 생체연료전지를 넣어 전기를 얻는 데 성공했다. 달팽이와 랍스터의 체액에는 인간의 혈액과 마찬가지로 포도당이 가득 들어 있다. 만들어진 전기는 0.53V로 ’AAA 건전지’의 30%에 불과한 수준이지만 생체연료전지를 이용해 살아 있는 생물에서 전기를 뽑아낸 첫 사례로 꼽힌다. 고의관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분석연구부 책임연구원은 "생체연료전지를 실제 살아 있는 생물에 적용해 전기를 뽑아낸 실험이 성공한 만큼 몇 가지 문제만 해결하면 머지않아 실생활에 적용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글 원호섭│자료제공 매일경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