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 시간과 비용 단축…환자 맞춤형 치료도 가능
바야흐로 손톱만 한 조각 위에 오장육부를 비롯한 사람의 모든 장기(臟器)를 만들 수 있는 세상이 도래하고 있다. 간이나 심장 같은 인간의 장기를 모방한 ‘칩 위의 장기(organ on a chip)’가 벌써 10개가 넘게 개발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서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 상황이다. 하나의 칩 위에 지금까지 개발된 여러 종류의 장기를 모두 배치한 ‘칩 위의 인간(human on a chip)’에 대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어 주목을 끌고 있다.
인간의 모든 장기를 하나의 칩 위에서 구현하는 ‘칩 위의 인간’ 프로젝트가 추진되고 있다 ⓒ thenewstack.io
신약 개발에 드는 시간과 비용 획기적으로 단축
‘칩 위의 장기’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신약 개발의 시간과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고, 논란의 중심거리로 떠오르고 있는 동물 임상실험을 더 이상 추진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손톱 정도의 크기에 불과한 칩이 어떻게 신약 개발의 시간과 비용을 줄일 수 있는 것일까. 그 의문에 대한 해답은 칩의 구조에서 찾을 수 있다.
전자회로가 깔린 칩 위에 살아있는 특정한 장기를 구성하는 세포를 배양함으로써, 해당 장기의 기능과 특성을 파악할 수 있다. 칩 위에 깔린 전자회로는 장기의 종류에 따라 역할이 조금씩 다르지만, 공통적으로는 장기에 퍼져있는 모세혈관을 모방해주는 역할과 물리적 반응을 감지하여 데이터를 산출하는 역할을 맡는다.
특히 ‘칩 위의 장기’는 생리적 세포 반응을 감지할 수 있어서 특정한 장기의 세포 반응이나 물리화학적 반응에 대한 메커니즘을 상세히 연구할 수 있다. 이 같은 특징 덕분에 신약개발이나, 독성평가에 대한 모델로 ‘칩 위의 장기’가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칩 위의 폐’의 작동 원리 ⓒ wyss.harvard.edu
‘칩 위의 장기’는 지난 2010년에 최초로 개발되었다. 펜실베니아대 바이오공학과에 재직하고 있던 우리나라의 허동은 교수가 하버드대 부설 위스연구소(Wyss Institute)의 연구진과 공동으로 개발한 3cm 가량의 소형 칩이 최초의 ‘칩 위의 장기’다.
당시 개발된 ‘칩 위의 장기’는 폐 세포를 배양한 ‘칩 위의 폐(Lung on a chip)’였다. 칩 위에 살아있는 폐 세포와 혈관 세포를 배양함으로써 실제 폐처럼 허파꽈리와 모세혈관을 갖추고 산소와 이산화탄소를 교환하는 기능을 수행하도록 설계했다.
그리고 폐 세포에는 가느다란 진공펌프를 연결하여 실제로 폐가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뱉는 것처럼 팽창과 수축을 반복하도록 했다. 여기에 모세혈관 세포에는 피가 흐르도록 해서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하여 노폐물을 배출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이에 대해 허 교수는 “당시 개발한 ‘칩 위의 폐’에는 폐와 관련된 질환의 진행 상황을 실시간으로 관찰하는 기술이 적용되었다”라고 언급하며 “특히 단일 질환이 아닌 화학요법에 의한 부작용으로 유발된 합병증까지 모사할 수 있는 기능을 갖고 있다”라고 밝힌 바 있다.
충치를 칩 위에서 연구할 수 있는 기술도 개발
‘칩 위의 폐’가 세상에 처음 선을 보인 이후 ‘칩 위의 장기’는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이제는 시리즈물처럼 모든 신체 부위를 대상으로 개발되고 있는 추세다. 대표적으로는 인간의 눈을 따라 한 ‘칩 위의 눈(Eye on a chip)’과 피부 구조를 그대로 재현한 ‘칩 위의 피부(Skin on a chip)’ 등을 꼽을 수 있다.
실제 인간의 눈처럼 눈꺼풀을 깜빡이는 곡면 구조의 ‘칩 위의 눈’은 공 모양의 눈을 칩에서 구현하기 위해 입체적으로 얽힌 혈관을 이차원의 평면 구조로 펼치는 ‘플랫마운트(flat mount)’ 시스템으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미세혈관을 피부세포와 함께 칩에서 배양하는 ‘칩 위의 피부’는 기존의 인공 피부 조직으로는 확인할 수 없었던 알레르기나 아토피 증상 등 피부 건강과 관련된 중요한 시험을 할 수 있는 장점을 갖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최근 들어서는 미국의 과학자들이 충치를 칩 위에서 연구할 수 있는 ‘칩 위의 치아(Tooth on a chip)’까지 개발해 치의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미 오리건주 보건과학대의 연구진이 개발한 ‘칩 위의 치아’는 구강 내에 존재하는 치수(dental pulp) 세포의 기능을 보다 이해하기 쉽게 고안되었다. 치수란 치아 내부를 구성하는 소성결합조직으로서, 신경과 혈관이 풍부하게 분포되어 있는 부위를 가리킨다.
칩 위에서 충치를 연구할 수 있는 ‘칩 위의 치아’ 시스템 ⓒ OHSU
다양한 치아 손상과 치료에 따른 치아 형성 과정을 살펴볼 수 있기 때문에 ‘칩 위의 치아’를 통해 질병 발생의 원인 및 환자에게 효과적인 충치 치료법을 개발할 수 있다는 것이 대다수 치과의사들의 의견이다.
또한 이 칩에 장착되는 치아는 실제 환자들의 어금니를 기부받아서 사용할 수도 있기 때문에 특정한 환자의 치아 치료와 구강 미생물에 대한 조사를 환자 맞춤형 방식으로 진행할 수 있는 장점도 갖고 있다.
‘칩 위의 치아’ 프로젝트를 주도하고 있는 ‘루이즈 베르타소니(Luiz Bertassoni)’ 박사는 “이 칩 장치는 자연 치아를 최대한 모방했다”라고 소개하며 “특히 내부 치아 간에 유체와 박테리아가 이동할 수 있도록 설계했기 때문에 과학자들은 현미경으로 치과 재료와 박테리아가 어떻게 상호 작용하는지를 관찰할 수도 있다”라고 설명했다.
베르타소니 박사는 몇 년 후면 ‘칩 위의 치아’가 치과의사들이 주로 사용하는 치료 방법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아픈 치아를 환자의 입에서 빼낸 다음, 이를 ‘칩 위의 치아’에 장착하여 치과 재료와 상호작용하는 방식을 관찰하여 환자에게 가장 적합한 재료를 선택한다는 것이다.
그는 “멀지 않은 미래에 그동안 복잡하고 어렵게 여겨졌던 치과치료에 새로운 장을 열게 되는 변화를 불러오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준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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